불완전성 끝에서의 삶-<노르웨이의 숲>


1987년 발표 이래로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ノルウェイの)은 일본 내 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36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번역출간 되었다. 국내에서도 1989년 첫 번역본인 『상실의 시대』(유유정 역)뿐만 아니라 임홍빈, 허호, 김난주, 양억관 등의 여러 번역가들에 의해 새로이 번역되고 이제는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작품이다. 작품의 이와 같은 인기는 일부 평자가 언급하는 야설, 혹은 연애소설의 성격으로 읽는 독자들 덕이기도 하겠지만, 작중 등장인물이나사건에서 독자들이 얻는 공감의 공도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공감을 자아내는 주제어 중 하나는상실이다. 한국어초판본의 제목이 상실의 시대라는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작중 인물들의 자살 등의 요소는 또 다른 작중 인물들에게 상실이 되어 그들을불완전한 존재로 완성시킨다. 비단, 상실의 경험이 원인이되지 않더라도 작품에서는 레이코의 말을 통해 모두를 불완전한존재라고 말한다.

우리(우리라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과 비정상적인 사람을 하나로 묶은 총칭이에요.)는 불완전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불완전한 인간이에요.” (447)

이러한 불완전한 인간들은 각자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이며, 오히려 이를 통해 삶을 이해하고 이어나간다.


현재의 상태를 내면화하는 것이 이해라고 한다면 과거의 것을 내면화하는 것은 기억하는 것이다. 소설은 와타나베의 1인칭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도입부에서 와타나베의 불완전한기억”(21)에 의한 서술이다.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러나나오코는 나를 이해해서 어쩌려고?”(243)라며 이해의가능성을 차단한다. 그러나 나를 언제까지나 기억해 줘”(252)라며 그에게서 기억을바란다. 나오코의 이런 대사는 그녀의 자살 혹은 와타나베가 겪을 상실에 대한 복선이다. 나오코는 기즈키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사람으로 남는다. 기억하는 행위는 크게는 이 작품을 존재케 하는것이며(소설이 와타나베의 기억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작게는불완전성(상실)에 대한 수용으로 삶에 대한 이해에 다가간다.


작품에서의 기억은 상실을 전제로 한다. 기즈키, 나오코의언니, 나오코는 모두 기억하는 행위의 대상이다. 이들은 모두자살로써 타인에게 상실을 주었고, 이러한 상실의 불완전성을 내면화하지 못한 나오코 역시 자살한다. 나오코는 만날 때는 깨끗한 몸으로 만나고 싶어”(410)라는 대사를 통해 그녀 자신의 불완전성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기즈키가 죽은 후 와타나베는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그 일부로 존재한다”(48)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겪는 상실도 삶의 일부로 치환할 수 있는 인물로거듭난다. 그에게 있어서 누군가의 죽음은 또 다른 누군가를 상실을 통해 불완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미 사에서 쓰는 레이코의 표현에 따르자면 뒤틀린사람으로 만드는 원인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와타나베는 이러한상실에서 충분히 슬픔을 느끼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이다. 레이코가 불완전한 인간들이기에 서로 돕고 살아야함을 알고 있듯, 와타나베는 불완전함을 수용하고 삶을 이어나가는 힘이 있는 인물인 것이다.


작품의 배경적 측면에서 불완전성에 대한 지각은 와타나베의 대학 생활과 미도리와의기억을 통해 드러난다. 패전 후 1950년대를 경제 부흥의발판으로 삼은 일본은 1960년대 이후로 급격하게 부강한 국가로 성장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가의 부강함은 경제적 계층을 나누고 이는 미도리와 같은 경제적 서민층을 만들어낸다. 비싼사립학교나 250엔 짜리 급식, 미도리가 겪는 경제적인 제반문제는 급격한 경제 성장에 의한 상대적 박탈의 결과다. 또한 대학 분규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취업 문제로인한 운동권의 와해나 미도리가 포크송 동아리에서 읽으라고 강요받은 마르크스주의 등은 경제적으로 불완전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미도리는 난 알아. 난서민이니까.”(306)라는 말에서 자신의 경제적 불완전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미도리는 이러한 불완전성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믿으며 그녀의 삶을 이어나간다. “그럼 나는 혁명 같은 거 안 믿을래. 난 사랑만 믿을래.”(307) 이러한 태도는 와타나베에게 땅을 밟고 서서 걷고 숨쉬고 고동치는”(445)감정을 느끼게 한다.


『노르웨이의 숲』은 불완전한 기억의 틀에서 서술되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는 불완전한 사람들의 불완전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완전성을수용하고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은 자칫 완전성을 무시하고 허무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오독될 수 있다. 그러나작품은 불완전성을 수용한 사람들만이 삶을 누리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충분히 슬퍼한 후에 성숙한 인간으로거듭남을 보여준다. 마치 어떤 만화에서 나오는 우리는 모두미생이라는 말과 비슷한 메시지를 작중인물의 상실과 기억을 통해서 드러낸다. 작품 속에서 불완전성을 수용하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이 과정을 겪고 내면화한 인물들은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한단계 더 나아간 삶을 살아 나간다




*해외문학회 150629 발제문입니다.



덧글

  • 하늘여우 2015/07/12 08:26 # 답글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라 저도 좀 읽고 싶은데 아쉽게도 도서관에 갈때마다 빌리는걸 까먹고 있는 작품이군요 orz 읽어야지 하고 생각하는건 언제나 도서관 폐관 이후...
  • 부렉뚠뚠 2015/07/12 14:00 #

    제가 맨처음 접했던 버전은 txt파일 형태의 <상실의 시대>였는데, 인터넷에서 종종 돌아다니더라고요!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블랙)

00
4
735